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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빵 아저씨

글길_문학 2012. 4. 12. 11:14

늦가을 비가 내리고 난 뒤,
요즘 갑자기 거리엔 찬바람이 불고,
어려운 경제 한파 속에 어렵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의 삶은
어쩐지 바람에 갈 곳 모르고 이리저리 뒹구는 플라타너스 이파리보다 더 측은하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며칠 전부터,
우리 가게 앞에는 파란 트럭에 천막을 치고 계란빵을 파는 육십 대 후반의
지긋하게 나이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트럭을 세워 놓고 장사를 하기 시작했다.

 

트럭 천막에는 하얀 글씨로

'영양식 계란빵 1,000원에 2개,
 밤 빵 1,000원에 6개'라는 문구가 뜨겁게 피어오르는 오뎅 국물의 하얀 김 속에 늘 훈훈함을 주는 것 같았다.

 

가끔 추위에 종종걸음을 걷다가 따듯한 오뎅을 먹는 사람도 있고
간헐적으로 어린 학생들이 계란빵을 사 먹으러 트럭 주위에 서성이곤 했다.
하지만 어려운 경기 탓인지 늘 장사는 신통치 않아 보였다.

 

어제는 밤 8시쯤 되어 구청에서 나온 네다섯 사람이 카메라와 단속 스티커를 들고
5만 원짜리 과태료를 즉석에서 발부하고 개선장군처럼 자랑스럽게 사라진다.
10여 분 후 아저씨는 남한산성보다 더 무거운 한숨을 내리 쉬더니
천막을 내리고 자동차 시동을 걸고 떠나갔다.

 

오늘도 오후 5시가 되자, 서글서글 인상 좋은 아저씨의 얼굴이 거울에 비추듯 나타났다.
그리고 어제처럼 또다시 장사하기 시작했다.
난 또다시 구청 단속반이 오지 않을까 불안 불안했다.


트럭주위엔 손님이 없고 벌써 겨울이 와버린 것처럼 찬바람이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9시가 넘고 또다시 밤이 깊어간다.

손님이 없다.


군복 바지에 파란 조끼를 입고 알파벳 D가 쓰인 검은 모자를 쓴
아저씨는 트럭 밖에 나와 잎사귀가 말라붙은 벗나무 아래서 연신 담배를 태운다.
담배 연기는 초조와 삶의 슬픔처럼 피어오르다 바람에 차갑게 흩어진다.

 

밤 10시가 넘어가는 시간 난 컴퓨터를 켜놓고 책을 잠시 보고 있는데,
누군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기척에 몸을 돌려 바라보니,

황금빛 가을 국화 같은 환하고 탐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누군가 성큼 다가선다.


" 사장님 늦은 시간에 출출하시죠?
 따듯한 오뎅 좀 드시고 하세요."


계란빵 아저씨였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책상 위에 놓고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투명한 플라스틱 사각 통에 위생 봉지를 덧씌운 그릇 속엔 곱창처럼 꾸불꾸불한 뜨거운 오뎅 2개가
게란빵 아저씨의 따듯한 마음처럼 하얀 김을 허공에 끝없이 피워낸다.

 

우리는 누구이고,
삶이란 무엇일까?


가난하기에 늘 사회에 소외되고 춥게 살아가는 계란빵 아저씨지만, 편하고 따듯한 배려가
한편의 멜로 영화보다 더 감동적이고 벅차게
살아있는 인간애와 감동이 물밀 듯 밀려왔다.

 

독일의 유명한 시인 괴테가
"울면서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인생을 논하지 말라" 고 했는데
이런 경우를 두고 했던 말인가......,

난 잠시 상념에 젖어 물끄러미 오뎅을 바라보다가,
오뎅 꼬챙이를 들고 오뎅을 한입 한입 먹기 시작했다.
내 생애에 이렇게 맛있게 감동적으로 오뎅을 먹어본 기억은 오늘이 정말 처음인 것 같다.

 

오뎅을 모두 다 먹고 빈 그릇을 갖다 주러 트럭에 갔다.
아저씨는 바람에 풀린 트럭 천막 끈을 묶고 계셨다.
슬금슬금 다가가서 통 밑에 천 원짜리 두 장을 잽싸게 밀어 넣고 아무렇지 않은 척 시치미를 떼고,

 

"아저씨! 오뎅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라고 말한 후
잽싸게 사무실에 들어왔다.
잠시 후 문을 열고 들어 온 아저씨는 이러면 안 된다고 하며 천 원짜리 두 장을 내민다.
내가, 오뎅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드려야 한다고 하니 극구 사양이다.

찬바람에 늦가을 밤은 자정을 향해 졸린 듯 깊어간다.
비록 가난하지만, 인간적인 아저씨의 훈훈함 정이 오뎅 국물보다 더 뜨겁게 내 가슴속 곳곳에 하얂게 피어오른다.


황금빛 국화꽃 향기에 잠 못 이루는,

꽃향기를 아는 늦가을 바람처럼
난 계란빵 아저씨의 따듯한 인간애의 뭉클한 감동에 잠 못 이룰 것 같다.

2009.11.4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