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론

디지털 이론

글길_문학 2009. 12. 2. 15:14

최혜실님 글(문학평론가. KAIST교수)
새로운 기술과 탈근대의 세계관의 만남
―미래 디지털 서사로의 발돋움
1. 디지털 매체의 등장과 문학의 변화
세기말을 요란하게 장식했던 ‘디지털 시대’ 는 21세기를 통과하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아니 사람들은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 없이는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웜 바이러스가 창궐하자 전국 인터넷망이 마비된 것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치자. 그러나 인터넷이 마비되자 운행이나 주식시장. 기업. 관공서는 물론이요 학교. 예약 서비스가 줄줄이 마비되더니 한국 경제와 사회가 일대 혼란을 겪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제 인터넷은 대한민국 곳곳에 속속들이 뻗쳐 있는 수도관이 물을 제공해주는 것처럼 우리의 삶을 유지해주는 중요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이해하는 사람들도 디지털 매체가 문학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현대 문학이론과 밀접한 관계를 이루며 짐핸되 왔다는 사실에는 의아해 할 것이다. 기술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인간 감성의 가장 세련된 고차원의 표현인 예술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말인가? 그러나 이런 의문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쉽게 풀린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디지털 기술은 인간의 지식 생산. 교환. 소비의 과정이 더 이상 인쇄물로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발명되었다. 글은 기억 속으로 사라지는 말과 달리 보존성이 뛰어나며 멀리까지 전달되는 장점이 있다. 여기에 인쇄술의 발달로 같은 문서를 수천 권 찍어낼 수 있게 되자 지식은 대중화되면서 동시에 균질화 되었다. 수만 명이 지식을 같은 방식으로 접하게 된다는 사실은 지식의 객관화, 권위 등의 믿음을 낳는다. 근대의 세계관은 인쇄술의 방법론과 일치하는 바가 많다.
그런데 이런 지식의 전달과 보존의 방식이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한계에 봉착하였고 그 극복의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정보의 운용 방식에 근본적이 변화가 나타난다. 시대의 필요가 기술을 발전시켰고 기술의 발전이 다시 시대를 변화시킨 것이다.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은 문학은 새오운 매체의 기술과 상호작용하며 피어나고 있다.
2. 디지털, 하이퍼텍스트, 인터넷
논의에 앞서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용어를 정의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은 비트(bits)라는 개념을 이해할 때 그 본질이 드러난다. 비트는 정보의 최소단위로서 'binary digit'의 약자. 2진수 가운데 한 자리를 말한다. 즉 0과 1의 두 자리 단위로 모든 정보를 담아내는 것이 비트이며 디지털이라고 할 수 있다. 비트는 무게도 색도 없으며 정보의 DNA로 구성하는 가장 작은 단위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아날로그는 그는 아톰(atoms)이 기본 단위이며 구체적인 물질로 되어 비트와 대조를 이룬다.
CD는 디지털이나 오디오 테이프나 옛 레코드판은 아날로그이다. 아날로그 방식은 음량의 세기를 자기의 세기나 물리적 진동의 세기로 표현하였다. 반면 CD는 음량의 세기를 숫자로 바꾸어서 원판에 차례대로 그 숫자를 기입해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논리적인 ‘계산’이 가능해서 일부 데이터에 손상이 있어도 앞뒤를 맞춰보아 적당히 메꿔 넘어갈 수 있다. 레코드판과 달리 표면에 흠집이 웬만큼 나도 음질에 지장이 없는 것이 그런 이유이다. 종이에 인쇄한 그림들은 아날로이지만, 컴퓨터 그래픽은 디지털이다. 화면을 미세한 점으로 나누고 각각의 점에 숫자로 표시된 색깔을 대응시킨 것이다. 이것 역시 계산이 가능한 까닭에 여러 가지 특수효과를 논리적으로 구성하여 첨가할 수 있다.
정보화시대 이전까지 정보는 대게 아톰을 기본단위로 만들어졌다면 디지털시대에 모든 정보가 비트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일종의 아날로그 미디어인 신문, 잡지, 책, TV 등에서 정보를 얻고 서류와 대차대조표를 통하여 경재활동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많은 정보들이 컴퓨터 네트워크를 통해 세계로 전달된다. 이때 비트는 아톰과 달리 무게와 부피가 없기 때문에 손쉽게 운반될 수 있다. 엄청난 양의 정보가 상호 소통될 수 있는 새로운 발견인 셈이다
디지털 기술은 첫째, 정보의 저장이 쉽다. 예를 들어 활자는 시작과 끝이 분명하고 되돌리 수 없으나 전자매체에서는 교정과 복사가 쉽다. 둘째, 입력과 저장, 출력이 순환구조를 이룬다. . 예를 들어 인쇄된 글과 그림은 스캐너로 다시 입력하여 원래 정보로 회복 가능하다. 셋째, 여러 유형의 정보가 하나의 통일된 형식. 즉 기호로 표현되므로 멀티미디어가 쉽다.
하이퍼텍스트는 종래 아날로그 텍스트와 근본적으로 다른 방식에 초점을 맞춘 개념이다. 하이퍼텍스트(hypertext)는 인터넷에서 사용되는 웹문서 형식(HTML)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 우리가 인터넷에서 사용하는 웹사이트는 종이책 같은 텍스트와 달리 마우스를 누르면 원하는 부분을 이곳 저곳 열어갈 수 있다. 사용자는 작가가 정해놓은 한 가지 순서로 글을 읽는 것이 아니라 마우스로 링크를 클릭해서 여러 개의 경로를 택하여 글을 읽을 수 있다.
반면 인터넷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컴퓨터 통신망. 또는 그 정보로서 TCP/IP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연결된 여러 통신망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네트워크의 네트워크로 정의할 수 있다. 그 광대함과 편리함 때문에 인터넷은 기존 사회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는 기폭제 역할을 하고 있다.

3. 디지털 이론과 ‘해체론적’ 문학이론
1) 상호텍스트성
새로운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디지털 매체는 새로운 가치관을 창출하기도 했지만 그 개발의 배면에는 기존의 가치관으로 이 사회를 더 이상 이끌어가지 못한다는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었다. 따라서 디지털 매체의 탄생과 발전이 근대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인 해체론적 사유와 맞닿아 있음이 우연한 일은 아니다.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에 의하면 작가는 더 이상 작품 뒤의 유일한 목소리. 언어의 유일한 주인. 생산의 유일한 기원이 아니다. 텍스트는 작가의 의식의 표출이라기보다는 수행 과정에서 그 의미가 전달된다. 작가는 자신이 간직한 광대한 사전에서 언어를 끄집어낸다. 수많은 문화의 부분들로부터 끌어들인 이 기호와 인용의 창고들은 다만 뒤섞여지고 혼합될 수 있을 뿐이다. 작가의 텍스트는 언어의 상호텍스트적이 저장소로부터 끌어낸 기표들의 연속이다. 이 텍스트에 접근하는 독자 또한 이미 다른 텍스트의 복합체로서 차연과 자유로운 놀이. 산종의 과정에서 자아를 텍스트화 한다.
말장난하는 것처럼 보이는 해체구성(deconstruction)으로서의 책읽기 개념은 끝없는 링크로 텍스트가 연결되는 하이퍼텍스트에서 현실감 있게 작동한다. 독자는 자신이 원하는 곳만을 클릭해본다. 독자는 광대한 데이터베이스의 바다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검색하여 복사하고 자르고 편집한다.
물론 이런 책읽기가 이전에 <주역>이나 포스트모던 소설에서 시도되기는 했다. 그러나 하이퍼텍스트에서 이 방식은 훨씬 본질적이다. 능동적 독자들은 책의 순서를 바꾸어 읽기도 하지만 종래의 책은 대체로 순차적으로 읽는 것이었다. 반면 하이퍼텍스트에서 순서는 독자의 마음에서 따라 달라진다.

2)탈중심, 탈주체의 현상
하이퍼텍스트는 체계화의 기본 축이 없는 연결된 텍스트의 집합체로 구성되어 있다. 독자는 웹에서 이동할 때 자신의 그 동안의 체험이나 연구 중심에 따라 체계화의 원칙을 바꾼다. 독자 중심으로 편집되고 수정되는 과정에서 정보는 독자의 의도에 따라 끊임없이 생산되고 소비된다.
네버게이팅(navigating)이란 의미는 하이퍼텍스트의 끊임없이 변하는 특성을 잘 드러낸다. 배가 바다의 물살을 가르고 지나가도 곧 바다의 수면이 합쳐지고 낙타가 사막을 밟고 지나가도 모래바람은 그들의 발자국을 덮어버린다. 사용자가 정보의 바다에서 정보를 나름대로 편집하고 조합해도 그것은 다시 데이터 저장소 안으로 흔적 없이 들어가 버린다.
또 하이퍼텍스트는 쉽게 편집, 수정이 된다. 원래 텍스트에 글자를 쓰면 그것은 이미 객체로 되어 새롭게 고치려는 저자의 시도에 저항을 하게 마련이다 편집이나 삽입이 거의 불가능할 뿐 아니라 틀린 글자를 고치려 해도 잘 지워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그러나 컴퓨터 화면에서 글자는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자유자제로 변형이 가능하기 때문에 컴퓨터의 화면은 주체를 흉내내는 거울과 같은 의미를 띄게 된다.
주체와 객체의 경계에 놓인 전자적 글쓰기 방식은 탈근대의 다중 주체의 문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현실 세계에서 나의 이드(id)는 무의식의 세계를 통해 굴절되면 몸을 매개로 드러난다. 나의 이드에는 성, 인종, 나이, 머리색, 신체 장애 등 육체적인 특성들이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 ID는 육체로부터 자유롭다. 이 ID만으로 우리는 그가 여성인지. 남성인지, 백인인지 흑인인지 알 수 없다.
자아정체성은 원래 모순적이고 부분적이며 전략적인데 통일된 자아가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의문은 지식의 중심에 합리적이고 심사숙고하는 의식적인 주체가 존재한다고 했던 데카르트 이래로 계속 제기되어 왔다. 주체가 동일하고 연속적이기 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존재이며 이런 주체의 탈구에 대한 주장은 무의식을 발견한 프로이드에 의해 이미 깨어졌다. 주체는 단일하고 합리적이라기보다는 타자의 시선이라는 거울 속에서 형성된다. 정체성은 개인으로 우리 내부에 이미 존재하는 충만한 정체성으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외부로부터 채워져야 하는 완전성의 결핍에서 생겨난다. 우리의 정체성은 최종적이고 고정적이지 않고 형성되려는 노력이 항상 외부의 무엇에 의해 전복되는 불안정하고 가변적인 것이다.
하이퍼택스트의 비선형적 특성인 비선형적 구조는 일관된 논리로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근대의 논리에 제동을 걸고 있다. 또 양방향성으로 빚어지는 작가와 독자. 텍스트의 상호작용은 우리에게 다중주체의 전범을 제시한다. 지금까지 작가들이 텍스트의 소설에서 애써 시험한 다중시점에 하이퍼택스트 소설에서는 매체의 본질로서 우리 앞에 와 있는 것이다.

지식의 전달과 보존의 방식이 정보가 축적됨에 따라 한계에 봉착하였고
그 극복의 방식으로 디지털 기술이 사용되기 시작했고
정보의 운용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가 나타난다.
시대의 필요가 기술을 발전시켰고
기술의 발전이 다시 시대를 변화시킨 것이다.
새로운 시대 정신을 담은 문학은 새로운 매체의
기술과 상호작용하며 띄어나고 있다.

4. 디지털 매체와 새로운 이야기 장르
이야기꾼이 이야기를 하면 구비 서사가 되고 이야기가 종이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문학이 된다. 이야기는 영상매체에서 영화나 TV 드라마로 몸바꾸기를 한다. 이야기가 디지털 매체에서 표현될 경우 디지털 서사가 된다. 그러나 이야기는 매체가 바뀜에 따라 그 매체의 특성에 맞게 다른 표현 방식을 취한다.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전반적인 특징으로 다음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유연성, 미디어의 유연성을 이용하여 비선형적 글쓰기를 할 수 있고 다양한 인물들의 역할을 독자가 맡아 표현할 수 있다. 둘째, 보편성, 기술의 발달로 저렴한 가격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가 프로듀서―디렉터가 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셋째, 상호작용성, 영화나 드라마, 라디오와 달리 디지털 스토리는 웹상에 있어서 창작자와 청중 사이에 경계가 무너지고 모든 사람이 참여자가 될 수 있다.
디지털 서사는 4개의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네트워크 문학, 디지털 매체의 내트워크 기능만을 주로 사용하는 통신문학이 그것이다. 형식은 종래 텍스트 문학과 별로 다르지 않고 누구나 자유롭게 글을 올릴 수 있는 네트워크상에 작품이 창작품이 창작, 수용되기 때문에 여러 문제점들이 나타난다. 팬픽, 문학웹진 통신문학의 구비문학적 특징 등 인터넷상의 다양한 문학 현상들이 있다.
둘째, 하이퍼텍스트 문학을 들 수 있다. 최근 자신의 글이나 다른 사람의 글, 그림 등을 적절히 안배하여 홈페이지를 꾸미는 일이 보편화하고 있다. 또 전자책에 동영상, 검색 기능 등의 비선형성을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런데 디지털 매체의 하이퍼텍스트성을 문학에 적용하면 하이퍼텍스트 문학이 된다. 최근 외국에서 활발하게 창작, 수용되고 있고 한국에서도 하이퍼텍스트 시와 소설이 등장하였다.
셋째, 컴퓨터 개임 중 서사성이 강한 장르들, 게임은 영상이 강조된다는 점에서 영화와 닮았으면서도 프레임 속의 화면을 감상하는 영화와 달리 과정 추론적이다.
넷째, 인터랙티브 영화와 홀로그램, 가상현실이 발달하면 <스타 트랙>의 홀로테크 테크놀로지가 완성되지 않는다는 법도 없으리라. 강렬한 몰입과 자유로운 항해의 기쁨에서 더 나아가 가상공간의 캐릭터들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일어나는 사건을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참여하는 드라마. 그곳이 미래의 이야기가 사는 곳이 아닐까?
나아가 디지털 서사는 텍스트 문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신경숙이나 은희경 같은 여성 작가들이 독자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의 언어가 구어체하는 점에 있다. 영상에 익숙해져 있는 시청각 세대들은 문어체보다 귀에 쟁쟁 울리는 입담을 더 선호한다. 이 방식은 이문구나 김종광 같이 토착 민중의 정서를 반영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한없이 연장되면 추상적 사고를 담아내는 문자 매체에 익숙했던 독자들이 이제 구어체 방식의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밖에 영화의 보여주기 기법, 엽기, 자유분방함과 정감, 가벼움 등 디지털 영상 세대의 감성을 드러내는 신세대 소설들이 최근 대거 등장하고 있다.

5. 이론의 수용에 있어서 문제점
디지털 이론은 외국에서 처음 발생하였으나 다른 문예 이론들과 양상이 많이 다르다. 외국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학문이기에 한국에서의 양상과 비교하여 그렇게 우월할 것이 없다. 심지어 인터넷 문학이나 게임의 서사는 한국 쪽에서 더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형편이다. 외국의 이론가들이 한국의 인터넷과 무선 통신 보급률에 주목하면서 현재 디지털의 사회 현상을 가장 선구적으로 보이고 있는 나라로 평가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를 기반으로 한 문학 행위 또한 마찬가지인 것이다.
더구나 인터넷 세대에게 영어는 그리 큰 장벽이 아니다. 요즈음 학생들은 외국 사이트에도 거침없이 들어가 비교적 무리 없이 작품을 감상하고 게시판 등에 자기 의견을 올리고 있다. 오히려 문예 전문가들이 가상 공간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이야기 현상들에 놀라며 그 원인 분석에 급급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야기 방식을 젊은이들에게만 맡겨 놓을 때 질의 저하, 음란 퇴폐물의 창궐 등 많은 문제점을 낳게 된다.
지금까지 인류는 자기 표현 욕구를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해왔으며 새로운 매체가 발생할 때마다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디지털 매체는 그 탈중심성, 상호작용성, 영상성 등의 시대 정신을 그와 일치하는 하이퍼테스트의 형식적 특성에 담아내며 미래의 서사로 발돋움할 것이다. 이 분야에 문예 전문가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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