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창문을 열었을 땐 청아한 햇살과 상쾌한 공기가 무척이나 기분 좋은 하루를 느끼게 했다.
2008년 6월1일 일요일
오늘은
염산북초등학교 30회 서울.경기 친구들이 불암산 산행을 가기로 했던 날이다.
배낭도 없이 그냥 가벼운 등산화,등산복 차림에 햇빛 가릴 모자만 하나 챙겨들고 일찍 집을 나섰다.
오랫만에 타보는 지하철을 몇번 갈아 타고 7호선에 탔을땐 도봉산을 가는 사람들 때문인지
온통 차안엔 배낭을 맨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는 듯 했다.
약속 시간인 오전 10시를 10분쯤 지나자 갖고 있던 핸드폰의 벨소리가 베토벤의 운명교향곡처럼
파음을 내며 연신 울어 대기 시작 했다.
내가 6호선 화랑대역 1번 출구에 도착 했을 땐 10시20분을 지나고 있었다.
모두 나만 도착하길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지각한 마음에 자괴지심이 들었지만 반가움속에 따듯한 동창들의 손목이 더욱 더 정감있게 느껴졌다.
3대로 나누어 탔던 차는 바로 출발했고 태능 입구를 지나자,
계절의 변화속에 새파랗게 우거진 플라타너스가 싱그럽게 펼쳐져 우리를 도열 해주는 듯 했다.
잠시 후 태능을 벗어나 불암산 이정표를 보고 산의 진입로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불암산은 서울 노원구와 남양주시와의 경계를 이루며 늘어서 있는데 우리는 남양주시 방향에서 진입했다.
선두에서 가는 병훈이차를 따라서 유스호텔을 지나 우리가 도착한 곳은 조경이 아름다운 산장 이었다.
정원의 거대한 돌하루방과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의 익살스럽고 해학적인 얼굴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화접리99번지 )
우리는 이곳에 여장을 풀고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잠시 후 우리는 시원한 냉수 한잔씩 들이킨 후 삼삼오오 짝을 지어 산행에 나섰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청자빛 하늘 아래 불암산의 2개의 암봉이 침묵에 잠긴채 거대한 원뿔 형상이 되어 우뚝 서 있었다
낯선 산의 도도함 같기도 하고 한편으론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억겁의 긴 묵상 같기도 하다.
문득 산의 고깔 모양 같은 주봉을 바라보니,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가
바람에 하늘거리는 떼죽나무 잎새에 새록새록 피어난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깎은 머리
박사(薄紗)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臺)에 황촉(黃燭)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梧桐)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히 접어 올린 외씨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世事)에 시달려도 번뇌(煩惱)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合掌)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우는 삼경(三更)인데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고깔 모양 같은 산....!'
그래서 불암산이라는
명칭은 큰 바위로 된 봉우리가 마치 송낙을 쓴 부처의 형상이라 하여 붙여졌음에 공감이 갔다.
오늘도 산은 아름다운 고깔이 아니라 거칠은 소나무에 기생하는 송라와 쑥으로 섞어서 만든
송라립(松蘿笠)을 쓰고 말없이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에게 중후한 묵상을 안겨주고 있는것 같다.
*참조:(김홍도의 그림:아래그림은 조선시대 저잣거리에서 송낙을 쓰고 시주를 하는 탁발승의 모습)
일다경(따듯한 차를 한잔 마시는 시간)쯤 올라가니,
몇 백년은 되어 보이는 듯 한 아름드리 불암사의 붉은 일주문이 보이기 시작 했다.
사찰에 들어 가는 첫 번째 문- 오늘 만큼은 속세의 무거운 짐을 모두 벗어 버리고 들어서고 싶었다.
일주문에 들어선 순간,
한 곳으로 마음을 모으는 일심(一心)이 투명한 거미줄이 되어 산봉우리까지 잠시나마 이어지는 듯했다.
정면에 있는 불암사 경내를 비껴 우측에 있는 등산로를 향했다.
등산로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울긋불긋 산을 오르고 내리는 모습을 바라본자니, 문득
당나라의 시인 두목의 산행이라는 시 맨마지막 한 구절이 잠시 생각났다.
霜葉紅於二月花
'상엽홍어이월화'-라고 그는 서리맞은 단풍이 2월의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지만,
단풍과 꽃보다 정감있고 평화롭게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이 감히 문필로 그려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 보였다.
긴 묵상에 잠겨 오르는 산길은 푹신거리는 흙 대신 정상까지 온통 화강암이 거칠게 깔려 있었다.
땅속에서 용암이 녹아 식은 후 수천년의 세월속에 거친 풍화와 침식속에 흙은 온통 씻기우고,
거친 화강암만이 세월의 뼈처럼 남아 있는 듯했다.
그래선지 앞뒤의 등산객들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고,
화강암에 여장을 짚는 단음의 스틱 소리만이
'딱 딱' 참나무를 쪼아대는 딱다구리처럼 산속 가득히 청아하게 퍼져 나갔다.
어쩌면,
그 소리는 삶속에 깃든 희노애락속에 주발처럼 구겨진 자신의 맘을 올곧게 펴내는 산인들의 소리 같기도하다.
산아래는 칡덩굴과 더불어 떼죽나무와 굴참나무,갈참나무,느릅나무,상수리나무가 많더니만,
정상을 향할수록 점점 암반부엔 소나무가 많아지기 시작 했다.
소나무엔 미풍에 송화가루가 봄빛속에 날아가고 대신 파르스름한 어린 솔잎이 손가락 한마디쯤
돋아나 첫여름의 온화한 햇살속에 잎맥의 엽록소 가득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적막한 산속엔,
가끔씩 무료한 청솔모가 늙은 황송의 등걸을 오르 내리다가 산까치 소리에 놀라 달아나기도 했다.
산을 오른지 40분쯤 되어 오른쪽 소로엔 암반으로 만들어진 무쇠같은 제2 주봉이 나타났다.
대부분 등산객들은 정상인 주봉을 향해 올라 가느랴고 한사람도 제2 주봉을 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가파르고 위험한 암벽을 오르자 앞이 시골 앞마당쯤 되어 보이는 평퍼짐한 제2 주봉에 올라설 수 있었다.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린 듯 툭트인 전망속에 남양주시가 시원하게 펼쳐져 있었다.
들판은 온통 초록빛이었다.
여름의 둥지속에 풀과 나무는 파랑새의 깃털처럼 자라고 있었고,
하얀 실개천 처럼 펼쳐진 도로위엔 흰색,빨간색,파랑색의 차들이가 수족관의 금붕어가 되어
긴 지느러미를 흔들며 유영 하는 듯 했다.
혼자 잠시 묵상에 잠겨 있는데 어디서 인기척이나 잠시 되돌아 보고 깜작 놀랬다.
30대 초반의 여자가 뒤쪽에 홀연히 서 있는게 아니가?
아니,
혼자가 아니라 둘이었다.
여자가 서있는 발 아래를 보니 2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애가 바위 위에 눞혀 곤히 잠들어 있었다.
잠시 머리가 혼란 스러웠고 한편으론 어처구니가 없었다.
얼마나 산을 좋아하면 어린애를 들쳐 업고 가파르고 위험한 바위산을 타고 산행을 하는지....!
'저러다 실족이라도 해서 추락하면 어쩌려고..'
난 낯선 타인이고 혹시나 그 사람의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을것 같아
"산이 가파르니 조심하세요!" 라고
암벽에 팩을 박듯 한마디 남기고 산의 정상인 주봉을 향했다.
비탈진 길을 올라 가면서 갈증에 애가 탔었는데 시원한 약수터가 나왔다.
돌 틈에 흘러 나오는 시원한 석간수를 한 모금 들이키니 입안 가득히 박하 향기처럼 퍼져가는 느낌이다.
약수터 옆 주점엔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수(長壽)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하지만 어쩐지 그들은 긴 생의 집착보다
장수(長愁)- 자아를 성찰하는 긴 생각을 들이키고 있는 듯 했다.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드디어 시원하게 펼쳐진 푸른 하늘아래 산의 정상이 알몸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한마디로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절묘한 경관이었다.
태초에 누군가 무수한 산속의 암반을 모아 찰흙으로 빛어 놓으것만 같았다.
그래서 불암산은 원래 금강산에 있던 산이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오랜 옛날 서울에 남산이 없어 남산을 찾는데 ,
금강산에 있던 산이 남산이 되려고 왔지만 먼저 남산이 들어서 있어서
되돌아 가지 못하고 서쪽의 불암산이 되었다고...,'
온통 암봉으로 된 산을 보니 이야기처럼 금강산을 조금 닮았다는 느낌이 든다.
불암산 주변에는 큰 산이 없고 넓은 산간분지나 평야지대가 많아 전망이 좋은것 같았다.
산 정상에서 바라 보니 왼쪽엔 흙내음 가득한 초록빛 남양주시가 펼쳐져 있고,
오른쪽엔 희미한 기억처럼 희뿌연 서울 상계동 아파트촌이 삼류 극장의 스크린처럼 펼쳐져 있었다.
구름도 자고 가는 정상에서 바라보는 산과 들판의 아름다운 경치는
언어의 연금술사인 시인이나 심금을 울리는 경이적인 석학조차 풍광을 문필로 표현할 수 없을것 같았다.
드넓은 공간과 대지엔 시간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운 자연만이 생명의 운율속에 살아있을 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미미하고 하챦은 존재처럼 느껴질뿐이다.
문득 암벽을 굽이처 파랗게 부서지는 솔바람속에 나옹선사의 시가 떠올라 욻조려 봤다.
청산은 나를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하네
맑고 투명한 바람을 쐬니 안돈된 심중속에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든다.
잠시 거친 너럭바위에 앉아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잠시 명상에 잠겨본다.
'불암사...!
늘 공허하고 배움이 없다하여 무학이라 했던 무학대사....,
산을 뒤흔드는 깊은밤 독경 소리에,
깨달음을 얻기 위해 먹빛 장삼의 베옷을 나부끼며 고뇌와 번뇌가
깃들 때 마다 죽장망혜을 짚고 이곳 암산을 얼마나 무수히 오르 내렸을까?'
하지만 불암사를 중건한 대사지만 어쩐지,
득도보다 그의 심중속엔 열반에 들때까지 겸손한 무학으로 남아 있을것만 같다.'
오후 2시쯤 되어 하산하기 시작했다
하산길은 가쁜하고 쉬웠지만,
'불혹의 나이에 우리가 마음속으로 오르고 또 내려가야 할
삶의 여로에 놓인 산은 얼마 만큼 펼쳐져 있을까?'
작은 상념속에 푸른 산자락 녹음만이 맑은 물결이 되어 무릅밑 정강이 까지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석간수같은 물방울이 떨어지며, 발이 시릴것만 같다.
오랫만에 친구들과 함께한 산행...!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부분집합속의 작은 원소가 되어 나를 되돌아 보게 해준것 같다.
산장을 떠나면서
언제 보게될지 모르는 불암산을 다시 한번 올려다 보았다.
침묵속의 암봉은 코발트빛 창공 아래 평화로운 얼굴이 되어 억겁의 명상에 잠겨 있었다.
끝으로 항상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하루의 산행을 같이 해준 친구들에게 새삼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하고 싶다
* 위의 사진은 산행이 끝나고 산장에서 한컷-행복한 친구들의 모습이 타임캡슐처럼 영원히 추억속에 남아있길
바래 본다.
또한 세심하게 모든 음료와 주류및 음식을 완벽하게 준비해 온 미옥,유순 총무님께 다시 한번 감사 드린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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