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못할 빗속의 여인 ♪♪
지금은 어디 있나 ~♪♪
노란 레인코트에
검은 눈동자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 없이 걸었네
잊지 못할 빗속의 여인
그 여인을 잊지 못하네
다정하게 미소지며
검은 우산을 받쳐주네
내리는 빗방울 바라보며
말없이 말 없이 걸었네~ ♪♪
한가한 오후 시간 우리컴퓨터 매장 옆 가게에서 흐느끼듯,
로맨틱하게 흘러나오는 신중현의 노래 소리 이다.
이 노래 소리를 듣다보니 햇병아리 같았던 초등학교1학년의
담임 선생이셨던 양효인 선생이 불현듯 생각난다.
1973년 7월의 어느날,
학교 가기 전 부터 오늘 처럼 엄청나게 비가 폭우가 되어 쏟아졌고,
동네의 길과 도랑은 온통 흙탕물 투성이 었다
우산이 없기에 아버님이 비옷를 만들어 주셨는데,
비료포대를 아래쪽 양쪽에 팔이 들어가게끔 구멍을 내고,
밑면은 머리가 들어갈수있게 둥그렇게 도려내면 쉽게 비옷이 되었고,
먼저 책보를 어깨에 둘러매고
머리부터 비료포대를 거꾸로 뒤집어 쓰면
완벽한 비옷이 되었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생각하면 우수꽝스럽게 느껴졌겠지만
당시 우리마을의 나이드신 할아버지들중 몇 분은
짚·띠 등으로 안을 엮고 겉은 줄기를 드리워 끝이 너덜너덜한 도롱이를 입고
논,밭을 다니신분들도 있었으니,
체구가 작은 우리들에게 비료포대는 손쉽고 안성맞춤의 비옷이었던 것이다.
친한 동네 친구들과 마을입구 당산나무 아래서 만나
흙탕물 투성인 신작로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당시 마을 입구를 벗어나면 1.5km가까이 학교까지는 신작로 좌,우엔
끝없이 펼쳐진 논 뿐이었는데,
온 들판은 중국 황하강을 터트려 놓은 것처럼 논과 길은 형체도 없이사라지고
누런 황토물 투성이었다.
친구들과 난 반바지를 추스리며 허벅지까지 차오르는 물길속에
눈 짐작으로 길을 가늠하며,
학교와 마을의 중간에 있는 가운데 다리까지 왔는데,
엄청나게 쏟아지는 빗줄기속에 누군가 우산을 받쳐들고
해바라기처럼 목마르게 서 있었다.
그는 다름아닌 우리의 담임인 양효인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비에 흠뻑 젖은채
불어나는 물줄기 속에 한손엔 슬리퍼를 들고,
다리엔 온통 파랗게 개구리밥이 묻은 채 맨발로 서 계셨다.
전화가 없던시절 물줄기에 아이들이 휩싸이지 않을까 염려되어,
우리을 만나기 위해 온통 물뿐인 들판에 연못의 노오란 꽃창포처럼 서 계셨던것이다
천둥 번개속에 남자 선생님들도 나오기 싫어하는 지독한 폭우를
여선생님 단독으로 홀로 헤치고 나오셨던것이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애들아 물에 휩쓸려 가지 않게 물길 조심해서 빨리들어가고 ,
혹시나 친구들 만나면 오늘은 학교에 나오지 말라고 해라!"
우린 마을로 되돌아갔고,
마을 입구에 되돌아봤을때에도 여전히 우산은 그곳에 있었었다.
아련한 추억속의 회상을 깨우듯
창밖엔 빗방울이 거세게 창문을 두드린다.
눈이 크고 쌍거풀(당시는 이 용어 조차 몰랐지만)이 져서
친구인 경종이는 항상 우리 담임을 "눈깔보"라고 놀려댔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참 정감있는 선생님이자 잊지못할 빗속의 여인이었던것 같다.
창밖엔 쏟아지는 빗줄기속에 무수한 행인들의 우산이 형형색색 동동 떠내려가고,
난 파란 개구리밥이 되어 추억의 물줄기를 타고 어딘지 동동 떠내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