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
"차렷"
"경례"
"안녕히 계세요!!" 라는
반장의 종례 소리가 끝나자마자,
경쟁하듯 반짝반짝 초로 닦아 놓은 윤기나는 교실 마루바닥에
덜컹거리며 나무의자를 걸상에 밀어 넣고,
"꽈당"
넘어지는 의자의 굉음을 들으면서,
우린 우르르 교실을 빠져 나오곤 했다.
마치,
닭장위에 졸고 있던 닭들이 컹컹짖는 강아지소리에 놀라,
홰를 치며 마당에 뛰어 달아나듯이..!!
그렇게, 선생님으로 부터 항상 빨리 해방 되고 싶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우린 문명의 시간을 벗어나,
자연의 시간으로 되돌아 가고 싶은 회귀 본능이었는지 모른다.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우리에겐 최초의 시간은 문명의 초침소리가 아닌,
닭 울음이 앞산에 메아리치는 자연의 시간 이었다.
그렇기에 시골에 태어난 우리들은 문명의 시간을 벗어나 하늘과 바람과
풀잎이 나부끼는 자연의 시간을 갈구했는지도 모른다.
문명의 철조망같은 테두리인 초여름 학교수업이 끝나고 나면,
우린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다니곤 했는데,
먼지 날리는 신작로 길 보다 항상 뚝방 길을 좋아했다.
신작로 길은 넓고 가깝긴 했지만,
고무신을 신고 뾰족히 뛰어나온 자갈부리에 걸려 넘어지거나
작은 돌들이 고무신발 속에 굴러 들어오면,
걷기 불편하고 발바닥이 따금거렸기 때문에 방과후 집에 갈때는
항상 카페트처럼 부드러운 뚝방길의 잔듸와 클로버가 뒤섞인 풀을 밟으며
다니는것을 무척 좋아했다.
뚝방길은 광활한 불갑저수지에서 시작되어,
군남 장터를 휘돌아 우리가 다니던 초등학교앞을 거쳐
우리동네 동구밖까지 이어져 지는 폭 넓은 물길이었다
뚝방길은 어른 두사람이 손으로 맞잡을 정도로 넓은 폭이었으며,
물이 많을땐 우리 키를 넘었기에 그럴땐 친구들은 조심하느랴고 미역을 감지 않았다.
평소엔 깨끗한 물은 우리의 보폭에 맞춰 느긋한 황소걸음 처럼 항상 흘러내리고 있었으며,
비가 올때는 시뻘건 황톳물 이거나 아니면,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에 마시고 조금 남은 농부들의 탁한 막걸리 색이었다.
뚝방길위엔 항상 서너 마리의 누런황소가 게으르게 풀을 뜯으며,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잊혀진 고향을 그리워하듯
"음~매"
"음~매"
하는 황금빛 울음 소리를 내다가 흐르는 물속에 제 얼굴을 비춰보곤했다.
친구들은 길을 가다가 가끔 풀잎의 거미줄에 걸린 고추잠자리가 날개를 파닥이는걸
볼때마다 그걸 떼어 장난 하느랴고,
잠자리 날개를 아주 찢어 놓아 잠자리를 조용히 천국으로 보내기도 하였는데,
지금도 투명한 잠자리 날개의 촉감이 손끝에 꿈틀거리듯 지문처럼 남아있는듯하다.
어떤때는 풀숲의 개구리를 잡아 짖궂은 친구들은 보리밭의 보릿대를 스트로우처럼 만들어
개구리의 하복부에 밀어 넣고 입으로 공기를 불어넣어서,
우스꽝스러운 배불뚝이를 개구리를 만들어 놓기도 하였다.
뚝방길은 계절마다 옷을 갈아입었지만 여름옷의 자연 무늬 속엔,
" 질경이,억새,패랭이꽃,민들레,억새,망초" 가 많았는데,
우린 유달리 행운을 갖다 준다는 네잎클로버를 찾기 좋아햇다.
뚝밑 물가엔 ,
강아지풀과 연한 녹색빛에 하얀꽃이 피는 부레옥잠이 많았는데,
지금도 기억속엔 간혹 지나가는 물뱀이 이브처럼 하얀부레옥잠꽃을 유혹하는 듯 했다.
친구들은 가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책을 찢어 만든 종이배를 물위에 띄워 놓고
따라 걷거나 ,
강아지풀을 뜯어 손바닥위에 올려놓고,
제 스스로 강아지처럼 부르는 소리를 내기도 하다가 함께
"까르르"
웃곤했고,
어떨땐 물위에 돌팔매질을 하다가
금방 싫증나면 벌렁 누러누워 파란 하늘의 양떼구름를 바라보곤햇다.
바람에 벼가 풀잎처럼 나부끼며 자라는 초여름의 논속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파아란 뜸북이
울음은 항상 같이 다니던 친구들에게 배고픔 처럼 들리기도햇다.
참 꿈 많던 유년 시절이었다.
그날도 그렇게 친구들과 뚝방길위서 그렇게 무료함을 달래고 있는데
멀리서 뚝방길을 따라 우리 윗마을 여학생들이 재잘거리며 서넛이서 오고 있었다.
친구들과 난 장난기가 발동했고 누가 뭐랄것도 없이 잽싸게 길 가운데에,
무성하게 자란 억새풀을 사람눈에 눈에 잘 띄지 않게 군데 군데 묶어놓고,
조금 앞서서 걷는 척했다.
잠시 후
재잘거리는 여학생들의 목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되돌아 보았을때는
악!
엄마야!
하는 비병소리와 함께 2명의 여학생이 넘어졌다.
한여학생은 뚝방길위에 보기좋게 뒹굴듯 넘어졌고,
또한 여학생은 책보를 맨채 물속의 수로에 거꾸로 쳐박혔다
하지만 나와 친구는 난 너무 놀라 바라볼 수 밖에 없었고
잠시후
"에퓨!"
"에퓨!" 하는 소리와 함께
그 여학생은 물속에서,
개천에 빠진 심봉사 마냥 허우적대기를 몇번 반복하더니 ,
간신히
뚝의 억새풀을 잡고 물속를 나왔고,
책보를 맨채 온몸에는 물이 발등으로 뚝 뚝 떨어졌다.
옷은 말리면 되지만,
책은.....!!
난 안절부절 못했고 ,
수줍음 많던 그땐 괜챦냐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세월이 흘러 한문시간에 결초보은이란 고사성어를 선생님으로부터 배웠을때,
참으로 얼굴이 화끈거렸다.
새삼 세월이 흐른 지금 ,
결초보은 이란 중국 고사 성어를 다시 한번 음미해본다.
춘추 시대 때
진(晋)나라에 위무자(魏武子)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사랑하는 첩을 거느리고 있었다.
그런데 위무자와 첩 사이에는 자식이 없었고,
위무자는 병이 들자 본처의 아들인 과(顆)를 불러 말했다.
"내가 죽으면 반드시 첩을 다른 곳으로 시집보내도록 하여라. "
세월 흘러 병이 더 악화되자 이번에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첩을 반드시 죽여서 내 곁에 묻도록 하라.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위과는 그녀를 죽이지 않고 시집보내면서 말했다.
아버님 병이 심해질 적에는 머리에 혼란이 일어나는 것이므로,
나는 아버님 병세가
악화되기 전에 아버님 말씀에 따라 개가 시키는 것이다.
그후 선공(宣公) 15년 7월에 이웃나라인 진(秦)의 환공(桓公)이 진나라를 쳐들어와서 군대
를 보씨(輔氏)에 주둔시켰는데,
이 보씨의 싸움에서 죽은 위무자의 아들 위과는 진의 이름난
장수 두회를 사로잡았는데,그것은 다름아닌 위과가 개가 시킨 첩의 아버지가
사로잡은 장수 두회의 발 앞에 풀을 묶어놓아
걸려 넘어지게 함으로써 그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밤 위과의 꿈속에 그 노인이 나타나서 말했다.
나는 그대가 시집보내 준 여자의 아비 되는 사람이오. 그대가 선친의
바른 유언에 따랐기 때문에 내가 은혜를 갚은 것이외다
지금 생각해보면 결초보은이란 고사 성어조차 몰랐던 유년시절,
결초악행을 한샘이다.
이글을 빌어 지난 유년시절의 추억의 세월속에 잘못했던
부끄러웠던 추억을 그 여학생에게 지면으로나마 바치고,
지금도 바람에 나부끼는 초록빛 풀잎을 볼때마다,
초등학교때의 붉게 물든 저녁노을과 넓은 들판그리고 긴 뚝방길이 생각난다.
풀잎이 자라기 좋은 7월!
어느 시인이 말한,
풀잎이 아름다운 이유는 바람에 흔들리기 때문이며,
풀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은 바람의 향기를 알았기 때문이다.
라는 잊혀진 시상을 짧은 상념속에 욻조려본다.